교양교육 혁신으로 전공자율선택제 안착과 기초학문 살리기 시도가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 정책으로 조급하게 전공자율선택제가 확대돼 전공 탐색이나 교양과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이 많고, 특히 기초학문 분야가 더 위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양교육 과정 혁신모델이 제시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설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하 교기원)은 지난 23일 한국방송통신대 열린관 대강당에서 전국 197개 회원대학을 대상으로 ‘전공자율선택제 안착과 기초학문 발전 기반 조성을 위한 교양교육과정 혁신모델’ 설명회를 열었다. 200명이 넘는 대학 관계자가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재성 교기원 원장은 “전공자율선택제를 안착시키고 융합의 출발점인 기초학문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교양교육과정 혁신모델 설명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교기원은 교양교육 혁신모델을 3가지로 나눠 제안했다. 기존 교양 체계에 1~2개 기초학문 교과를 신설하는 ‘자유학예 확장 모델’(모델1)과 교양교육을 전면 재편하는 ‘기초학문 강화 모델’(모델 2), 심화과정을 따로 도입하는 ‘자유학예교육 모델’(모델3)이다.

모델 1이 대학의 기존 교양교육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모델 2는 우수한 교양교과목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한다. 그리고 모든 기초과목을 후보로 놓고 교양과목으로 적합한 과목을 선정해 구성하는 방안이다. 여기에 학제 간 융합 과정을 신설한다. 교기원은 이 과정이 “교양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라고 밝혔다.

모델 3은 모델 1에 주제 중심의 커리큘럼인 심화과정(중핵과정)을 추가해 2~4학년에 이 과정을 이수하면 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번 혁신모델 개발에는 김선영 경남대 교수(자유전공학부), 윤승준 단국대 교수(자유교양대학), 박병철 부산외대 교수(교양대학)가 참여했다. 박병철 부산외대 교수는 “전공자율선택제가 안착하려면 미국처럼 모든 학생이 전공 소속이 안 된 채 대학에 입학해 전공탐색 기간을 가져야 한다”라며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국내에서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성 교기원장은 “이 모델을 만들면서 받은 평가가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이라는 평가였다”라며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 전공 교수는 자기 전공의 벽을 허물어야 하고, 교직원은 그전보다 더 정열적으로 일해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교기원은 교양교육과정 혁신모델을 통해 자율전공 입학생에게는 안정적인 커리큘럼을, 고사 위기의 기초학문에는 살길을 터주자는 큰 방향성에서 이번 모델을 기획했다. 여기에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에서 지원을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교양교육까지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기초학문 살리려고 교양과목 희생하나”

하지만 교기원의 이같은 모델 제안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성원 아주대 다산학부대학 자유전공학부장은 “전공자율선택제와 기초학문은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전공자율선택제로 입학한 학생들이 1학년 때 전공을 잘 탐색할 수 있도록 시수를 다 맞춰 놨는데, 기초학문으로 이 자리가 채워진다면 학생들이 적응하기 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홍성원 학부장은 또 “15년 동안 에이스 사업과 재정지원 사업을 받아 교양과목의 개선과 인력 충원을 했는데, 이제는 교기원이 제시한 모델 중 하나를 교육부의 강제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전공자율선택제와 기초학문을 살리는 두 가지 방안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대학 실무진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안양대 교무처 관계자는 “전공자율선택제 운영 방안을 알고 싶어서 참석했는데, 전공자율선택제보다는 기초학문을 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공 교수는 구조조정되면 교양과목을 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걸 못하게 겨우 막아놨는데, 이제 전공교과 교수에게 교양교과를 다 내줘야 하느냐, 전공을 꾸려가기 위해 교양이 희생해야 하느냐”고 맞섰다.

그러자 이재성 교기원장은 “교양과 전공으로 나눠진 틀을 깨야 한다”라며 “전공자율선택제로 들어온 학생들이 응용학문만 하는 것으로 알고 들어오지만, 사실 응용도 기초학문에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기초학문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어 “철학과는 없어지더라도, 철학 수업은 다양하게 개설돼 있는 유럽처럼 만들자는 생각”이라며 “기초학문이 있어야 학문후속세대도 양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기원의 이번 발표는 기초학문 존속 대학을 대상으로 한 모델이며, 기초학문이 부재한 대학을 대상으로 한 다른 2개 모델은 오는 6월 발표할 계획이다. 총 5개 모델 중 3개를 추려 모델별로 지원 대학을 선정하고, 3년간 예산을 지원한다. 성공적인 제도 안착을 위해 교기원의 교양교육 컨설턴트 인력이 3년간 밀착 지원한다.

이재성 교기원장은 “이번에 제시한 3가지 모델이 완벽하거나 모든 대학에 적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교기원과 대학이 협심해서 멋진 표본을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